음식 관련글은 아니지만, 멕시코에서의 에피소드 + 이곳에 무거운 글들 위주로만 올리는 것 같아서 엠파이트에 쓴 기사전문을 그대로 올려봄.  출처 – 엠파이트(mfight.co.kr)
4월 26일, 토요일 밤 9:00

너무 늦게 알았다.

TUF 라틴 아메리카 관련 UFC의 멕시코시티(멕시코의 수도) 기자회견이 4월 29일 화요일에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된 시점이 기자회견 시작 3일도 남지 않은 26일 토요일 밤이었다, 당시 나는 멕시코시티 자취방에서 존 존스와 글로버 테세이라가 메인이벤트에서 맞붙은 UFC 172를 보고 있었다. -현재 저는 올해가 지나기 전, 저의 오랜 꿈인 멕시코 식당 개업 준비를 위해 멕시코시티에 머물고 있습니다. 참고로 식당은 한국에서 합니다.-

데이나 화이트에 대한 열망.

기자회견에 참석하면 데이나 화이트와의 단독 인터뷰가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기자회견 관련자료에 데이나 화이트가 회견에 참석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기자로서의 버킷리스트-이런 간지러운 리스트는 안 만들지만-를 쓰라고 한다면 가장 첫 번째로 데이나 화이트와의 인터뷰를 꼽을 나였다. 데이나 화이트는 언제나 흥미롭고 명쾌한 대답을 내놓은 인터뷰 대상(Interviewee)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세계 격투기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이자, 진정 격투기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UFC에 가장 밀접히 관련된 사람이다. 흥미로운 내용을 뱉어내는 인물일 수밖에 없다.

이제까지 외신을 통해 그의 인터뷰를 구경만 할 수밖에 없던 입장이었는데 그때마다 ‘저 사람에게 한국에 대한 질문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가져왔었다. 예전 UFC 아시아 지부장인 마크 피셔와 전화로 한국과 관련한 인터뷰를 한 적은 있지만 그래도 데이나 화이트가 주는 무게감이라는 건 다르다.

‘만회’를 하고 싶기도 했다. 사실 데이나와는 2007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UFC 67 취재 중 한국 언론으로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단독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결과물은 썩 흡족치 않았다. 준비도 덜 되어있었고 겉핥는 질문밖에 할 수 없었다. ‘다시 기회가 온다면 더 잘해보리라’는 생각을 항상 가져왔던 터였다.

여하튼 난 부리나케 일면식 없이 이메일만 주고받던 UFC의 국제홍보담당 이사벨 양에게 “이 기자회견 어떻게 참석할 수 있나요?”라며 다급한 어조의 이메일을 보냈다. 동시에 혹시 하는 생각에 UFC 스페인어 트위터 계정에 “어떻게 참석할 수 있느냐”는 아마추어스러운 멘션도 날렸다.

부가적으로 실토하자면, 또 다른 UFC 홍보직원에게도 이사벨에게 보낸 것과 동일한 내용의 문의 메일을 보냈다. 회사에서 일해 본 사람은 알거다. 거래처 사람이 똑같은 건을 가지고 나와 같은 팀의 또 다른 사람에게 똑같은 문의를 따로 하면 얼마나 짜증나는지. 하지만 급했다, 난 적극적이어야만 했다. 체면 차린다고 누가 알아주나.

4월 28일, 월요일 오전 11:00

월요일 오전, 친절한 이사벨 양에게 ‘참석 언론 리스트에 추가시켜뒀으니 걱정 마, 꼬레아노’라는 답장을 월요일 오전에 받을 수 있었다. 나이스!

기자회견 참석 못할까봐 저렇게 안달복달했던 에피소드와는 별개로, 사실 뉴욕에서의 3주를 거쳐 멕시코에서의 수개월로 이어지는 나의 개인적 여정을 한국에서 계획하던 때부터 직감은 하고 있었다. 데이나 화이트와 한번쯤은 뉴욕이나 멕시코에서 맞닥뜨릴 계기가 있을 것이라고. 사실 UFC 173을 앞둔 시점에 뉴욕에 머물렀는데, 대회 개최지인 볼티모어와 뉴욕이 가까운데다 존 존스가 뉴욕 출신이라 뉴욕에 있는 동안 홍보를 겸한 대회 사전 기자회견을 기대했는데 그 예상은 빗나갔다. 기자회견은 없었다.

그러나 한국을 떠나던 3월 하순에 이미 2014년 내 UFC 멕시코 개최설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때문에 멕시코에 몇 개월 머무르는 동안 대회를 직접 취재는 못해도, 관련 기자회견 정도에는 참석할 수 있으리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 올해로 격투기 경력(격투기 시청에 국한됨, 실제 운동은 하지않음)16년차, 역시 격덕후의 직감이라는 것은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나의 핸드폰 메모장 어플에는 언제 있을지 모를, 기약도 없는 데이나 화이트와의 인터뷰를 대비한 질문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인터뷰가 5분 이하일 경우, 10분 이하일 경우 등의 시나리오에 대비해서 우선순위로 인터뷰 질문 순서까지도 준비를 했다. 데이나와 멕시코 시티의 타코 집에서 만나도, 코리아타운 삼겹살 집에서 맞닥뜨려도 바로 질문을 할 수 있도록. 이것은 언제든 대회에 나갈 수 있는 상태의 몸을 유지하는 UFC 파이터들과 같은 자세라고 할까, 아님 그냥 격덕후의 혼이라고 할까.

4월 29일, 화요일 오후 1:00

당일이다. 전날 밤 엠파이트 이교덕 편집장과의 카톡 수다 및 어드바이스를 통해 기자회견의 취재 작전도 나름 짠 상태였다. 단독인터뷰는 어떻게 할지, 어떤 질문을 할지.

잠시 개인적 얘기를 하자면, 난 오랜만에 보는 친구와의 만남에서도, 슈퍼마켓을 갈 때도, 번화가를 가도 항상 일관성 있게 빈티지-주변사람들은 누더기라고 함. 그냥 오래되어 헤진 옷-한 옷을 즐겨 입는다. 하지만 혼자서, 그것도 동양인은 한명도 참석하지 않을 것이 뻔한 기자회견에 빈티지하게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지만, 타국에서 중요한 자리에 낄 때는 하다못해 단추달린 셔츠라도 입고 가야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당신은 기억해야 한다. 내가 태어나서 세계 180개국 중 최소 40여개국의 음식은 먹어보고 극히 일부인 한 4개국 정도의 여행을 해본 바로는 멕시코 사람들만큼 머리를 반질반질하게 손질하는 나라는 없었다. 꿀릴 수 없다.

난 아울렛에서 싸게 구매했던 나의 이민가방을 열었다. 그리고 굳이 그렇게 애지중지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역시 아울렛에서 저렴하게 구매한 후 신지 않고 모셔두었던 나이키의 카모플라주 운동화를 꺼냈다. 그리고 스니커와 비슷한 색깔로 깔맞춤한 반바지, 그리고 슬림핏 청남방(슬림핏인데 사이즈가 110임)을 입은 후 머리칼에는 기름을 한껏 발라 경쾌하게 가르마를 탔다. 그리고 거울에 비쳐보니. 가만, 거울 속의 나는 흡사…

거울속의 나와 조우한 나는 머릿속으로 기자회견에서, 정말 만에 하나 사람들이 물어볼 예상 질문에 대비하여 이러한 스페인어 문구를 연습했다. “No, no soy Sexyama(아니에요, 전 추성훈이 아닙니다)”

택시를 탔다. 오랜만에 머릿기름을 발라서인지, 혹은 멕시코시티의 교통체증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뚱뚱해서인지(이게 맞을 듯)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있었다. 넉넉하게 30여분 전 멕시코시티의 중심부에 위치한 포시즌 호텔의 기자회견장에 도착을 했는데 이게 웬걸, 기자회견장은 입추의 여지없이 꽉 차있었다. 기자 등록을 하고 들어가는 데만 15분이 걸렸고, 회견장에는 무수한 카메라와 기자, 팬들이 있었다. 후에 들어보니 멕시코의 공중파 텔레비전 및 주요 매체를 제외하고도 대략 수십 개 이상의 매체에서 참석을 했다고 한다. 엄청난 수의 매체들을 본 순간 ‘단독은 힘들겠네’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굴뚝같이 마음을 먹었던 데이나 화이트와의 만남을 사정을 모를 때 할 수 있던 계획 같기도 했다. 이번 UFC 기자회견이 멕시코를 위한 것임을 감안했을 때 굵직한 멕시코 매체만 해도 셀 수가 없는데, 굳이 데이나가 나와 인터뷰를 해줄까하는 생각이 든 게 사실이었다. 물론 엠파이트가 한국에서는 나쁘지 않지만, 그래도 굳이 데이나가 이 와중에 우리의 인터뷰를 받아줄지는 의문이었다는 거다.

한편, 예상대로 기자회견장에는 사전 예고된 데이나 화이트 이외에도 현 챔피언 케인 벨라스케즈, 그리고 파브리시오 베우덤이 참석했다. 이윽고 기자회견은 시작이 되었고, 그 와중에도 사실 내 머릿속에는 온통 ‘데이나 단독, 데이나 단독’뿐이었다. 솔직히 라틴 아메리카에서 UFC가 무엇을 지지고 볶는다는 기자회견을 내가 취재한들 한국팬들에게 무슨 상관이 있으랴. 나야 원래 라틴 아메리카에 관심이 많아서 흥미로운 내용이었지만, 그래도 한국 팬들이 원하는 내용은 따로 있다. 한국 파이터, 한국 대회 개최 등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 권위와 신뢰가 실리는 사람. 그것은 케인도 아니고 베우덤도 아니고, 결국 데이나였다. ‘데이나 단독, 데이나 단독’.

데이나 단독에 눈이 먼 나는 데이나의 이목을 끌기 위해 기자회견 중간에 나의 국적을 어필하기로 했다. 매체가 워낙 많아 질문을 할 기회를 잡는데도 쉽지 않았지만, 결국 나의 차례가 되었다. 일어서서 이렇게 질문을 시작했다.

“저는 엠파이트의 이정수이고, 저 멀리 한국에서 왔습니다(All the way from South Korea)” (아래 영상 38분 10초 시점)

여하튼 인지상정, 아니 측은지심이라는 것이 있는데 날씨도 더운데 멀리서 온 뚱보를 조금은 측은히 여겨 인터뷰를 해주지는 않을까 하는 얄팍한 생각이었다. 한국이라는 말을 하자 데이나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것을 본 것 같다. “두유 노우 강남 스타일?”을 물을까 말까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결국 나는 ‘멕시코에 진출하는 데 왜 이리 오래 걸렸느냐’, 또 ‘지역별 챔피언을 만들 생각은 없느냐’며 더듬대며 질문을 던졌고, 데이나는 열정적으로 대답을 해주었다.

이윽고 공식 기자회견이 끝이 났다. 기자, 팬, 선수가 섞인 어수선한 분위기. 사실 인터뷰 섭외 승부수를 띄워야 할 때는 지금이다. 데이나 화이트가 무방비로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기자회견 후에는 각종 팬들과 미디어들이 모두 단상 쪽으로 몰리며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 와중에 데이나는 사진을 요청하는 팬들과 정말 거의 모두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고, 난 그 주위를 똥마려운 하이에나처럼 맴돌았다.

한편 데이나 뒤에는 나만큼이나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데이나, 이제 우리 출발해야 해요’라는 말을 반복하는 여자 직원이 있었는데 데이나는 여전히 팬서비스에 정신이 없었다. 실제로 데이나가 얼마나 팬들에게 친절한지를 목격한다면 놀랄 사람들이 꽤 많으리라.

팬들의 사진요구가 잦아들 때쯤, 내가 데이나에게 다가가 물었다.

“데이나, 오늘은 미디어 스크럼(기자회견후 데이나와 MMA전문기자들이 스크럼처럼 데이나를 빙 둘러서서 또 다른 작은 기자회견을 여는 것. 이 미디어 스크럼에서 흥미로운 얘기들이 많이 나온다)이 없는 건가?”

데이나는 “오늘? 오늘은 힘들지 않을까?”

그도 그럴 것이, 이날 기자회견에는 나를 제외하고는 100% 스페인어(브라질을 제외한 중남미 모든 국가의 공용어) 미디어였기 때문에, 스페인어를 하지 못하는 데이나 입장에서 스크럼을 하기도 어중간한 상황이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나와 인터뷰를 하는 건 어떨까요. 한국팬들이 듣고 싶은 얘기가 많을 텐데”

데이나가 정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래, 그러지 뭐, 못할 것 뭐 있나”

이 얘기를 들은 그 여직원은 곤란한 표정으로 “데이나, 우리 다음 스케줄로 출발해야 해요”라고 보챘고, 이때 데이나가 대답했다.

“이 친구 한국에서 왔다잖아. 잠깐 인터뷰하고 이동하자고, 어때?”

UFC 대표가 이렇게 딱 잘라 얘기하는데 이런 상황에 여직원이 어떤 말을 더하랴. 사실 한국에서 왔지만, 사는 곳은 호텔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인데, 그냥 잠자코 있었다. 덧붙이자면, 인터뷰 전 데이나와 짧게나마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데이나도 세월호 사고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인터뷰 오프닝을 세월호에 대한 애도를 표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엠파이트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데이나와의 인터뷰는 이렇게 성사된 것이다. 사실 내용 자체로는 너무 시간이 촉박해서 광범위한 주제에 대해 한가지씩의 질문밖에는 하지 못했다. 한걸음 두걸음 들어가야 더 재밌는 것이 인터뷰이지만 어쩌랴. 그래도 주어진 상황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을 했다는 것에 만족을 해야 했다.

케인, 베우덤과의 인터뷰의 경우 운이 좋았다. 사실 워낙 현지 매체 기자가 많아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기자회견 중 질문을 할 때 “한국에서 왔다”는 멘트로 운을 뗐더니 기자회견 종료 후 몇몇 기자들이 나에게 관심을 표했는데 그 중 한명이 영국의 MMA잡지인 ‘파이터즈 온리’의 스페인어판 기자인 꼬르반 베르데호였다. 굉장히 싹싹하고 친절한 친구였는데, 그 친구가 현지 기자회견 코디네이터와 얘기를 나누더니 케인과 베우덤과의 인터뷰를 연결시켜주었다. 고마워 꼬르반.

그나저나, 가지고 갔던 삼각대가 낮았던 탓에 케인과의 인터뷰는 앉아서 진행했는데, 인터뷰가 끝난 후, 녹화상태를 보기 위해 카메라를 켜자 그 안의 비친 내 모습은 섹시야마는 무슨! 전국 노래자랑 예선 및 호프집 노래자랑 등에 항상 나오는, ‘싸이 춤을 추는, 동네에 꼭 서너 명은 있는 그냥 뚱뚱한 아이’였다. 그 충격적 영상이 문제가 될 소지가 크다고 생각하야, 베우덤과의 인터뷰를 할 때 나는 그냥 카메라 뒤에 서있었다.

자기 PR에 가까운 글인데 너무 길어졌다. 예기치 못한 이 단독 영상 인터뷰들이 격투팬 여러분의 마음이라도 조금이나마 가볍게 할 수 있었기를. 인터뷰를 할 수 있게 도움을 준 UFC의 이사벨, 파이터즈 온리 스페인어 판의 친구들, 이교덕 엠파이트 편집장에 감사를 표한다. 그리고 케인과의 인터뷰를 보시면서 꽉 끼는 셔츠에 불편해 하실 격투팬 여러분에게 심심한 유감의 뜻을 표하며 급하게 이 글을 마친다.

○ 이정수 소개

– 엠파이트 소속 MMA 애널리스트 / 인터뷰어(Interviewer)
– MMA 팟캐스트 ‘김대환의 파이트 캐스트’ 사회자
– 엠파이트 미국(라스베이거스, 뉴욕, 포틀랜드) / 멕시코(똘루까, 멕시코시티) / 중국(북경) 현지취재팀 활동
– UFC 대표 데이나 화이트 및 UFC/WEC 전 라이트급 챔피언 벤 핸더슨 한국언론 최초 취재
– 현재 멕시코 식당 창업 준비중

이정수 기자

dorul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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