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서 진짜 멕시코 음식을 먹다보면, 다른 나라 음식에서 좀처럼 맛보지 못하는 낯선 맛들을 만난다. 이는 때로 멕시칸들이 사랑하는 고수의 향일때도 있고, 때로는 감칠맛 혹은 장맛이 결여된 오직 칼칼한 맛만을 가진 국물속 고추의 맛일때도 있고, 때로는 흔히 말하는 누린내가 가시지 않는 육향 강한 고기맛, 혹은 밀가루 또르띠야에 비교했을 때 텁텁하다고 까지 느낄수도 있는 건조한 느낌의 옥수수 또르띠야의 맛일때도 있다. 지금 얘기하고자 하는 맛은 멕시코의 신맛이다.

 

신 – 맛

 

멕시코의 신맛과는 전혀 예기치 못한 타이밍에 조우하게 된다. 소세지인 초리소가 시다. 국요리인 뽀솔레 국물도 시다. 또 아침음식인 칠라낄레나 엔칠라다에서도 신맛이 터져나온다.  훅 하고 들어온다.

IMG_2709 <시큼한 소세지인 롱가니사>

 

더 들어가보면 이 신맛은 어쩌면 미국식 멕시코 음식에서는 쉬이 찾아보지 못하던 맛이기에 더 생경하다. 미국화된 여느 타국가의 음식들과 비슷하게 멕시코 음식 역시 미국화를 거치며 모난 향, 튀는 냄새들이 상당부분 의도적으로 퇴화되며 모두의 멕시코 음식으로 거듭나게 되었는데 이 신맛도 본토 멕시코 음식에서 많이 의도적으로 억제되고 떨어져나간 맛의 대표적 예라고 볼 수 있겠다. 대신 사워크림, 미국식 체다치즈 딥 / 모짜렐라 치즈, 양상추 등, 어진아빠 스타일 표현을 빌리자면 ‘호불호도 안갈릴’ 재료들이 부각되고 딥프라잉이 굉장히 적극적으로 사용되는 미국식 멕시코 음식은 그 전반적 플레이버 프로파일, 즉 맛의 특성 혹은 구조가 아메리칸 컴포트 푸드(햄버거, 맥앤치즈, 피자, Etc)의 가족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많이 변화했다.

 

그런 미국식 멕시코 음식에 익숙해진 한국인이기에 이 본토의 신맛은 분명 묘한 맛이다. 동시에 한국음식에 있는 신맛이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아 또 한번 더 낯설다.

 

이 신맛에 책임이 있는 식자재 중 하나는,  ‘또마떼’라는  희안한 토마토 같기도 하고 아닌거 같기도 하면서 아니라고 보는게 맞을 거 같은 열매다. 또마떼는 대체불가능한 묘한 질감과 향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상당히 시큼한 맛을 낸다. 엔칠라다, 혹은 칠라낄레(옥수수 또르띠야를 바삭하게 튀긴 또또뽀를 살사베르데에 적셔서 크림, 양상추, 치즈가루를 뿌려 먹는  멕시코 대표 아침식사)의 핵심인 살사 베르데(그린 살사)의 메인재료가 이 또마떼이다.

 

나의 경우에 역시, 처음 칠라낄레를 먹었을 때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솔직히 말해 첫번째 멕시코 여행에서는 피하기까지 했던 음식이었다. 하지만 여러번 접하며 그 맛의 장벽은 허물어졌다. 침샘을 터뜨리는 능력을 가진 맛, 신맛만한게 있을까. 뻔한 엔딩같지만 지금은 칠라낄레를 하루 삼시 세끼 먹을수도 있다. 뽀솔레를 비롯한 멕시코 국물음식이 신 이유인 라임, 그리고 초리소/롱가니사 등 소세지에서 느껴지는 신맛의 원인인 식초의 신맛또한 마찬가지다. 이제 문제없다. 맛있다. 이 신맛은 본토 멕시코 음식의 핵심특성중 하나라는 것을 체감을 넘어서 공감을 하고 있다.

 

글쎄, 이 신맛을 처음 경험한 외국인들은 아마 두 부류로 나뉠것이다. 중독이 되거나 혹은 영영 고별을 고할테다.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이 받아들이는 신김치의 자극적인 맛과도 비슷하다 할까. 모든 사람이 좋아할 수 있는 맛은 아니지만, 좋아한다면 중독될수밖에 없음이 자명한 그런 맛이다.

 

반복학습?

일견 어불성설같지만 여러번을 먹어봐야 익숙해지는  필요한 맛이기도 하다. 익숙해지기전까지는 ‘이 맛이 무슨 맛이지’하며 고개를 기우뚱하게되지만, 익숙해지고 나면, 배고플 때 가장 생각나는 맛이 이 신맛이 되어버릴 정도로 중독이 된다.

 

나로서는 고민이 되는 맛이기도 하다. 비야 게레로에서는 이 신맛을 죽일것인가 살릴것인가. 과연 교육과 반복이 필요한 이 맛을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 혹은 이런 고민은 사서하는 고민인가.

 

Para los ciudadanos

이쯤에서 현존하진 않으나 내가 오픈하고자 하는 식당 ‘비야 게레로’의 기본적 존재가치에 대해 자문한다. 비야 게레로의 기치는 ‘Para los ciudadanos’이다. 영어로 직역하면 For the citizens, 즉 도시인들을 위하여 존재한다. 이는 우리의 접객태도로 보았을 때는 편안함, 아늑함, 친절함 등 흔히 떠오르는 보편적 ‘위함’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식문화적 접근의 관점에서 들어가자면 새로운 도시인들에게 새로운 식(食)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거창하게 Villa Guerrero의 역할론을 얘기해본다.큰 그림에서  Villa Guerrero의 역할은 멕시코의 멕시코 음식을 도시인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 전달방식은 비야게레로의 음식이 ‘모두를 위한 음식’은 아닐 것이다라는 것에서 출발한다. Villa Guerrero의 음식은 누군가에게는 약간의 모험일수도 있겠고, 누군가에게는 군침을 돌게하는 그것일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코를 찌르는 센 향에 두번 다시는 가고 싶지는 않은 식당일 수도 있겠다.  누구의 입에나 잘 맞는 멕시코 음식은 이미 한국의 많은 멕시코 식당에서 해내고 있다.

 

그래서 신맛은?

신맛은 살릴 수 있으면 살린다. 초리소는 시큼할 거다. 국요리인 깔도에도 레몬을 함께 낼 것이다. 엔칠라다/칠라낄레에 사용하는 칠레베르데의 신맛은 한국에 또마떼가 없으니 잘 모르겠고ㅋㅋ. 뿐만 아니다. 돼지고기에서는 돼지 향이 날거고, 식당에서는 고수향도 많이 날 거다. 그게 멕시코 음식이니까 그렇게 한다. 그렇게 음식을 하는게 내가 생각하는, 도시인들을 위한 Villa Guerrero의 존재역할이다.

 

그렇다, 비야 게레로의 따꼬는 모두를 위한 따꼬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롱가니사가 시큼하다며 눈살을 찌푸려도, ‘안타깝지만 원래 맛이 그렇습니다’라는 답변을 해야한다는 점에서 미리 애석하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