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쏴아~’

옅게 내리던 가랑비가 우산없이 걷기 부담스러울 정도의 소나기로 바뀌어 버려있었다. 방금 건조기에서 꺼내 뽀송해진 꾸러미속 옷가지와 정반대의 날씨다. 그래도 난 팔라펠과 케밥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빨래방을 나섰다.

우산대신 옷가지가 든 장바구니를 한아름 안고, 후디를 쓴 채로 브룩클린의 주택가를 누볐다. 맨하탄에서는 발에 치이던 중동음식 카트들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길에서 만난 벽화

 

길에 보이는 것은 샌드위치를 파는 델리를 겸하는 슈퍼마켓들 뿐(뉴욕시의 정말 많은 슈퍼마켓에서는 샌드위치등 간단한 식사를 판다), 비는 홈빡 맞으면서도 아무거나 먹기는 싫어서 마음에 드는 식당이 나올때까지 걷다보니 후디는 흠뻑젖었고 20분이 지났다. 걷기 좋아하는 성격을 가졌다는 건 이럴때 확실히 플러스다.

이윽고  큰길인 Myrtle Avenue에 당도했다. 불현듯 조용했던 주택가는 꽤 번화한 상권으로 바뀌었다. 많은 라티노 음식점, 더 많은 라티노들이 보인다. 내가 현재 브룩클린에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스페인어 영어가 병기된 간판들이 즐비한 이 곳에서 팔라펠 먹겠다고 찾아헤매는 것도 웃긴 상황이다. 중동음식은 잠시 잊고, 카리브해 국가 – 푸에르토 리코, 도미니카 공화국..-의 음식을 먹기로 계획을 바꿨다. 어차피 멕시코로 떠나기전 굳이 뉴욕을 들러 여행을 하기로 계획한데에도 이러한 뉴욕의 특성이 한몫했다. 정말 많은 나라의 음식을 한 도시에서 모두 맛볼 수 있다는 것. 푸에르토 리코를 비롯해서 도미니카 공화국, 자마이카 등 유독 카리브해 유역의 이민자들이 많은 뉴욕이다. 이들이 올때 몸만 왔겠는가, 음식도 가져왔겠지.

문제라 한다면, 내가 서있는 지역은 관광지는 아니고 식도락가들이 일부러 찾는 곳은 더더욱 아닌 곳으로 추정되는 그냥 큰길가였다는 것. 스마트폰으로 맛집검색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수많은 음식점들 중 간판만 보고 옥석을 어떻게 가릴지는 순전히 내 문제였다.

그때 내눈에 La isla restaurant란 음식점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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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isla,

스페인어 La isla는 영어로 ‘the island’다, 푸에르토 리코 출신 마크 앤소니가 조국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내가 즐겨듣던 노래 Preciosa(Pretty라는 뜻)에서 주구장창 부르던 가사라 익히 알고있다. ‘Isla del Caribe~ Isla del Caribe~(Island of the Carribean~)’, 라며 조국인 섬나라 푸에르토 리코를 노래한 것이다. 안양 비산동에서 나고 자랐고 그곳을 떠난지 만 4일밖에 되지 않는  내가 왜 푸에르토 리코 가수가 조국을 찬양하는 노래를 즐겨들었는지, 나의 취향에 실소가 나오기도 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안심이 되기도 한다. 멜론 탑 100을 즐겨들었다면 내가 여기에 있지 않았겠지.

아는척을 하자면, 카리브해의 아름다운 나라 푸에르토 리코는 미국의 자치령이라 국민들에게 미국 시민권이 있다. 고로 남미 국가들 중 유일하게 미국에 비자없이 입국이 가능한 나라 – 여타 남미국가의 일부 국민들이 미국에 입국하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고려하면 꽤 주목할만한 사실이다 -로 특히 뉴욕에 많은 이민자들이 거주하고 있다. 예술적, 특히 대중음악쪽으로 뛰어나서 마크 앤소니, 제니퍼 로페즈, 리키 마틴을 비롯한 좋은 가수들 그리고 힙합, 라틴, 레게가 섞인(듣다보면 화나는 허접한 퓨전 음악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사랑해 마지않는 라틴힙합 장르 ‘Reggaeton’의 뿌리인 나라이기도 하다.

창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니, 손님들도 많고 메뉴도 다양해보여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바쁜 식당의 열기가 느껴진다. 직원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손님들은 먹느라 정신이 없다. 주방이 정말 깔끔했고, 음식도 맛있어 보였다. 제대로 찾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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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럽게 말하자면, 아주 가끔은 식당의 메뉴만 봐도 ‘이 식당이 제대로 하는 집이다’라는 감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 곳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구색이 잘 갖춰져있다고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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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한 재료들로 만든 생경한 요리들이 꽤나 많아 보였다. 그 중 가장 눈에 띈 것은 Cuchifrito(꾸치프리또)라는 섹션이었는데 돼지의 귀, 혀, 피소세지 등 매력적인 부위들이 하위 메뉴로 적혀있었다. 조그마한 문제라고 한다면 Cuchifrito가 뭐냐는 거다. 메뉴를 구경하며 귀를 열어둔 바로는 이 식당의 공식언어는 스페인어인 것을 눈치챌 수 있었는데, 질문하기 미안할 정도로 바쁜 직원들을 잡고 Cuchifrito라는 것이 무엇인지 스페인어로 물어보기도 부담이고 답변을 내가 이해할지도 부담이었다. – 나중에 따로 확인한 바로는 Cuchifrito 는 돼지고기의 각 부분을 튀겨서 부위별로 먹는 푸에르토 리코식 요리였다 – Frito가 fried라는 뜻이기에, 튀긴 것이겠거니하는 추측으로 혀, 귀, 플랜타인 바나나, 소세지 Cuchifrito를 모험메뉴로 시키고, 반죽에 고기를 넣고 튀겨낸, 우리나라 떡볶이집 군만두와 비슷해보이는 비프 패티, 그리고 맛이 보장되는 Carne Guisada(소고기 스튜)가 밥과 콩이 함께 나오는 메뉴를 시켰다.

설레는 맘으로 집에와서 포장지를 펼쳤다. 이하는 개별 메뉴들의 사진들 

Cuchifritos - Lengua(혀), Oreja(돼지 귀), Morcillas(피 소세지), Guineo verde(그린 바나나),

바나나를 비롯한 모든 부위가 한 그릇에 포장된다. 우리나라의 순대와 비주얼이나 구성이 비슷한데 까만색 피 소세지는 맛도 우리나라 순대와 놀랄 정도로 유사했다. 한편 기름에 고기를 튀기는 조리법은 멕시코에서도 많이 쓰이는 편인데, 역시 중남미 음식의 조리법에는 유사점이 많은것 같다는 성급한 일반화를 살포시 해본다.

Arroz y Habichuelas(밥과 콩)

 

밥에는 콩이다. 콩밥. 생각하는 그맛이다.

 

 

짭잘한 맛, 감칠맛, 고기의 담백한 맛, 그리고 향신료의 맛이 어우러진 육중한 국물. 캐리비안 밥 도둑이라고 보면 알맞다. 육중한 고기덩어리들에 감자, 당근 등 볼륨감이 있는 야채가 들어간 스튜로 감자탕과 비슷한 색깔, 비슷한 구조, 어떤면에서는 비슷한 맛이다.

저 모든 메뉴가 약 15불이었으니… 17,000원 남짓한 돈으로 아주 흡족한 식사를 한 셈이다.
푸에르토 리코 본토는 아니지만, 푸에르토 리코식 식사를 이렇게 간편히 할 수 있는곳.
미국은 멜팅 팟이 맞고, 뉴욕은 그 심장부임에 틀림이 없다.
이외에 오늘 느낀점은, 블로그 글을 쓰는데 적잖이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과  자꾸 아는척을 하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두가지 느낀점에 대한 해답은 내일 밥먹으며 생각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