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시티를 떠난지 한달이 되었다. 멕시코 시티에서 보낸 3개월여는 생각만큼 순탄치 않았다. 일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진짜 한국을 경험하고 싶다면 서울을, 진짜 미국을  경험하고 싶다면 뉴욕을, 진짜 멕시코를 경험하고 싶다면 멕시코 시티로 가야한다는 각오로 멕시코 시티행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착오였다. 연고도 지인도 없었던 멕시코 시티, 원하는 곳에서의 배움은 못구하고 비싼 월세와 물가로 인해 돈은 쓸대로 썼다.

 

만약 고집을 부려 멕시코 시티에 더 머물렀다면 발품을 더 팔아가며 일을 구하의긴 했을 것이다. ‘일을 악착같이 구했다’, ‘좌절에 좌절을 거듭했지만 결국 원하는 식당에 취업했다’류의 ‘친구들 만나면 해줄만한 무용담 비스무리한 얘기거리’는 만들어낼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다고 음식이 맛있어지나 아님 내 머릿속에 뭐가 들어오나. 시간과 예산은 한정되어있고  나의 에너지는 일을 구하러 발품을 파는 것보다 음식을 배우는데에 집중하는 것이 올바르다는 생각이었다. 시간은 짧고 배울것은 많다.

 

그래서 멕시코 시티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거주지를 옮기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이 한편으로는 무언가에 굴복 혹 포기를 하는 느낌이 들어 찝찝하고 자존심도 좀 상했다. 허나 자존심이 밥먹여주지 않는다. 여튼 우리나라로 치면 수원이나 안양쯤 되는 메떼뻭(Metepec)에 위치한 친구가 살고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메떼뻭과 비야게레로는 버스로 1시간정도 거리인데, 멕시코 시티에서 비야게레로를 가려면 이것저것 다해서 세시간 넘게 걸리던 것과 비교하면 비야게레로와의 접근성도 양호했다.

 

배울 곳을 찾는것도 훨씬 수월했다. 성급하게 일반화를 하려는 의도는 없지만서도, 최소 내가 직접 경험한 바에 의하면(이라 함은 수십군데의 식당 문을 두드린 경험에 비쳐본다는 말) 멕시코 시티 사람들은 깍쟁이였다. 어느 식당하나 쉬이 일을 하며 배울 수 있게 하지 않았다.  그런 점은 나로서도 충분히 이해하는 바였다. 솔직히 말해 그들 입장에서 나는 스페인어 떠듬대는 한국에서 온 레시피 도둑이었을테니니까..ㅋㅋ

하지만 메떼뻭과 비야게레로에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메떼뻭에는 그곳에서 굉장히 오래 살아온 나의 친구들이 있고, 심지어 한 친구는 남자친구와 따께리아(따꼬집)를 운영하고 있었다. 비야 게레로? 비야 게레로의 친구들, 그리고 그 가족들은 말그대로 동네의 터주대감이다.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많고 한다리, 두다리만 건너면 비야 게레로의 유명한 식당들은 다 소개받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사실, 5개월여전 멕시코에 입국하기전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괜히 멕시코 시티 가서 고생하지 말고 비야 게레로로 와서 우리 집에서 살면서 음식을 배울 식당을 구해. 내가 도와줄게’라고. 난 당시 이렇게 대답했다. ‘큰 세계를 경험하고 싶다. 일단 내힘으로 일을 구해보고 어려우면 도움을 청할게’. 몇 달이 지나 결국 나는 도움을 청했다. 진작에 청했어야 했다.

메떼뻭으로 거주지를 옮긴 뒤로는 비야 게레로와 메떼뻭을 정신없이 왔다갔다 하면서, 하루에 두 세군데의 배움터(봉금없이 일하니까)에서 멕시코 요리를 배우고 있다. 모두 나에게 큰 가르침을 주시고 계시지만 배움터중에서도 백미를 꼽자면 롱가니사/초리소를 배우고 있는 정육점 돈 호나스(La carniceria Don Jonas)가 아닐까.

돈 호나스는 친구인 뻬뻬(Pepe)가 소개해주었다. 어느날 뻬뻬와 잔치집에 갔는데 공교롭게도 이날 함께 얘기를 하던 뻬뻬의 죽마고우가 돈 호나스 창업주의 손자인 에드손이었다. 바로 물었다.

‘에드손, 혹시 내가 그 곳에 가서 롱가니사를 배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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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니세리아 3대째, 에드손>

에드손이 대답하길

‘ㅇㅇ 전화하구 언제든 와 ㅋ’

이것이 인맥이로구나. 이것이 비야 게레로의 인정이구나. 이것이 비야 게레로가 ‘멕시코 시티’가 아닌 이유구나.

멕시코 시티였다면, 롱나기사를 배울 곳을 구하러 나가기전1.  ‘롱나기사 맛집’을 스페인어로 구글링해서 10군데 정도는 리스트업을 하고, 2. 구글 지도로 찾아 핸드폰으로 위치를 캡쳐하고, 3. 그 캡쳐한 사진의 주소를 토대로 일일이 식당을 찾아 헤매고 4. 또 식당에 가서 그냥 물어볼 수 있나. 메뉴하나 시켜놓고 먹고나서 5. 서버에게 팁을 많이 주며, ‘한국에서 왔는데’부터 시작해서 구구절절 사연을 설명하며 일을 해보고 싶다고 물어야 한다.

대략 반은 그 자리에서 ‘No’라는 대답을 하고, 나머지 반은 ‘사장이 지금 없어서 사장하고 일단 얘기를 해보아야 함’이라고 대답을 해준다. 사장과 1분도 안되는 대화를 하려고 하루 이틀 천금같은 시간을 기다려서 막상 그들과 독대하면 그마저도 결국 ‘No’라는 대답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배울곳 구하는게 이렇게 쉬울 수 있다니.

나중에 알게 된건데 돈 호나스는 비야 게레로에서 가장 유명한 롱가니사 장인의 정육점이었다. ‘비야 게레로 시장에 돈 호나스’라고 하면 비야 게레로 사람들 모두 다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며 ‘비야에서 최고의 롱가니사지’라고 입을 모으는 집이었다. 그런 곳에서 롱가니사를 배우게 되다니 살맛 난다.

롱가니사가 뭐야

롱가니사를 말하기 전해 초리소에 대해 얘기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널리 알려진 스페인 초리소와, 멕시코의 초리소를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사실 스페인을 가본적이 없어서 조심스럽지만, 겸손한 자세로 둘의 차이를 한번 짚어본다.

스페니시 vs 멕시칸, 제조법의 차이

일단 더 유명한 스페인 초리소는 통상적으로 돼지창자에 내용물을 집어넣은 뒤 훈연 및 건조 같은 2차 가공과정을 거친 꾸덕한 드라이한 소세지(페페로니처럼)이다. 색과 향을 내는 주요재료 중 하나는 삐미엔따, 흔히 알고 있는 파프리카 파우더다.  이외에 한국에서 사면 무척 비싸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ㅋㅋ

멕시칸 초리소는 반대로 훈연이나 2차공정을 거치지 않은 생 소세지라는 점이 가장 큰 차이일 것이다. 멕시칸 초리소에 들어가는 재료는 여기서는 말을 안해주리.

활용의 차이

두 국가의 초리소의 활용에 대해서 얘기를 해본다. 스페인 초리소는, 내가 아는한에서는 슬라이스하지 않으면 생으로 먹기는 힘들정도로 드라이하고 꾸덕한 질감을 가졌다. 빠에야로 위시되는 볶는 조리법이 결부되는 여러가지 요리 및 스튜류에 슬라이스로나 혹은 다져져서 질감, 향, 색깔을 증폭/지원/다양화 하는데 사용된다. 혹은 얇게 슬라이스 되어 치즈 및 와인등과 곁들여 먹기도 한다.

멕시칸 초리소는 프레시 소세지, 그러니까 생고기 상태이기 떄문에 스페니시 초리소처럼 바로 조리를 거치지 않고 먹을 수 없다. 대신 수분이 훨씬 풍부하고 큼지막하다. 스페니시 초리소가 ‘조연’역할을 한다면 멕시칸 초리소는 메인 프로테인(디시에서 고기, 생선 등이 주연으로서 해내는 역할)으로 사용 할 수도 있다. 롱가니사 따꼬가 대표적일 것이다. 롱가니사를 넣은 또르따(멕시칸 샌드위치)도 등으로 활용되고, 역시 국물요리에서도 큰 활약을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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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서 보이듯 포션이 된 것이 초리소>

자 그럼 저 위에 실컷 설명한 초리소와 롱가니사의 차이가 무엇이냐. 롱가니사와 초리소의 차이는 스페인어로도, 영어로도 찾아봤는데 말이 서로 다 달라서…시원한 대답은 없다. 일단 돈 호나스에서는 롱나기사를 소세지처럼 분량을 나눠 포션한 것을 초리소, 포션을 하지 않은 상태로 일자로 만든것을 롱가니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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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로 쭉 뻗은 롱가니사>

비법 레시피

덧붙여 롱가니사는 여느 소세지처럼 물었을때 ‘툭’하고 터지는 질감이 관건인 소세지가 아니다. 그보다는 그 안에 들어간 향료, 야채, 기타 천연 첨가물이 만들어내는 맛과 향을 즐기는 소세지이다. 이에 각 롱가니사를 만드는 집은 각자의 레시피를 가지고 있고 이는 그 집의 비밀임이 당연하다. 비야 게레로에 돈 호나스의 레시피 역시 3대로 이어지는 그 가문의 가족 이외에는 그 레시피를 아는이가 없다. 심지어 그 집에서 4년간 일하고 있는 로돌포 역시 레시피를 전혀 알지 못한다.

어느날 에드손은 나를 본인의 집으로 데려가며 이렇게 얘기했다.

‘정수 지금부터 보여주는건 누구한테도 얘기해주면 안돼’

정육점에서 가까운 본인의 집으로 데려가더니 에드손은 거실에 있는 찬장의 자물쇠를 열쇠로 열었는데 그 안에는 초리소에 들어가는 재료가 들어가 있었다. 극비의 재료들이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항상 맛있고 항상 감칠맛나는 돈 호나스의 롱가니사, 가족들에게만 전수되는 그 레시피를 내가 전수받은 것이다.

그 롱가니사는 올해내로 오픈하는 ‘비야 게레로’에서 맛보게 되실 수 있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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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니세리아 ‘돈 호나스’의 에드손과 로돌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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